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문단 편집) == 인종 학살 범죄에 대한 동조 == 전후 [[슈츠슈타펠]]의 점령지 주민 학살에 대해서는 서방 세계에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았지만 [[독일 국방군]]이 이에 동참한 것은 [[냉전]] 시대의 [[서독]] 연방군의 필요성에 의해 긴 시간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 독소전쟁 당시 남부집단군 점령지에서의 독일 국방군의 학살 혐의가 밝혀지고 룬트슈테트의 명령이 공개되면서 크나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당시 6군 사령관 [[발터 폰 라이헤나우]]가 [[강조 명령]]을 통해 "[[제노사이드|동부 전선에서는 장병들이 통상적인 전쟁 방식이 아니라 __유대인-볼셰비즘을 절멸시키는 전사로서 싸워야 한다.__]]"고 문서화하여 휘하 부대에 공람시키며 명시적인 명령을 통해 [[키이우|키예프]] [[유대인]] 학살로 대표되는 SS의 [[아인자츠그루펜]] 같은 학살 부대들의 만행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욱 큰 문제는 키예프 유대인 학살 이후 남부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가 이러한 강조 명령에 대하여 '''"적극 지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군의 명령이라고 쉴드 칠 구석도 없는 것이, 라이헤나우는 룬트슈테트에게 까마득한 후배였고 선배의 군사 작전을 망칠수도 있으며 군사적으로도 아무 쓸모없던 본 명령은 [[하극상]]으로 취급해도 무관하였다. [[페도어 폰 보크]]와 [[빌헬름 리터 폰 레프]]가 이 논리로 라이헤나우 명령을 씹었고[* 그래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까마득한 선배한테 반항했다가는 그나마 안 좋던 평판마저 사라질 게 뻔하니... 당연하지만 [[파울 하우서]] 앞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에 대해서 어떠한 군말도 나오지 않았던 점에서 룬트슈테트 본인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전범 재판 당시 룬트슈테트는 '나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다.'고 부인하였고 실제로 그는 전범 재판에서 이에 대한 혐의를 받지 않았지만, 최근 독일 전사학계에서 독일 국방군에 대한 인종 학살 범죄에 대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전시회를 개최할 때에는 1941년, 라이헤나우가 주도한 남부집단군의 대규모 학살이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남부집단군 예하의 4기갑군의 [[헤르만 호트]]의 “볼셰비즘과 그 살인 조직을 지지하는 유대인, [[파르티잔]]을 섬멸하는 것은 자기 방어 조치이다.", 11군의 지휘권을 인계받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11월 20일, "유대인-볼셰비키 체제는 완전히 근절되어야 한다."며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조치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명령 또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물론 호트도, 만슈타인도 전후 집필한 회고록에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안토니 베버 <스탈린그라드 전투>, 볼프람 베테 <독일국방군 : 2차 대전과 깨끗한 독일군의 신화>] 룬트슈테트는 끝까지 몰랐다고 부정했다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기밀이 해제되어 공개된 군사 문서들은 그가 라이헤나우를 두둔한 성명이 휘하의 헤르만 호트, 만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남부집단군 지휘관들과 장병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사실상 남부집단군의 어두운 역사인 인종 학살에 그 역시 중대한 책임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